무엇을 더할 것인가보다, 무엇을 거부할 것인가

도시를 걷다 보면 가끔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이 보인다.

주변과 어울리지 않는 조형물.

유행이 지나자 금세 낡아 보이는 거리.

누가 이용하는지 알기 어려운 시설.

하나하나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공모사업에 선정됐고, 다른 도시의 성공사례를 참고했으며, 새로운 볼거리가 필요하다는 판단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사업은 계속 늘어나는데 도시의 인상은 오히려 흐려진다.

왜 그럴까.

나는 그 이유가 돈이나 아이디어의 부족에만 있다고 보지 않는다.

도시에 취향이 없기 때문이다.

내가 말하는 취향은 예쁘고 세련된 것을 고르는 감각이 아니다.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을 거부할 것인지 정하는 기준이다.

어떤 건물을 허용할 것인지.

어떤 거리를 남길 것인지.

어떤 사업에는 예산을 쓰고, 어떤 사업은 하지 않을 것인지.

그 선택이 오랫동안 쌓여 도시의 성격을 만든다.

취향이 없는 도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도시가 아니다.

오히려 좋다는 것은 전부 가져오려는 도시다.

벽화가 유행하면 벽화를 그리고, 야시장이 성공하면 비슷한 야시장을 연다. 미디어아트가 주목받으면 화면을 설치하고, 빈 공간이 보이면 조형물을 세운다.

다른 도시에서 효과를 본 사업을 빠르게 따라가는 일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도시에는 그 도시만의 것이 남지 않는다.

모방은 빠르지만, 정체성을 만들지는 못한다.

취향이 있는 도시는 다르다.

교토가 교토답게 보이는 것은 오래된 건물이 우연히 많이 남아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교토시는 2007년부터 새로운 경관정책을 시행하며 건축물의 높이와 디자인, 옥외광고물 기준을 도시 전체 차원에서 다시 정비했다. 도심 건축물의 높이를 제한하고, 건축물과 광고물이 주변 자연환경과 역사적인 거리 모습에 어울리도록 관리하고 있다. 지켜야 할 도시의 모습을 정하고, 그 기준과 맞지 않는 개발과 광고를 제한한 것이다.

순천도 정원을 관광시설 하나로만 다루지 않았다.

순천시는 ‘정원도시’를 장기 도시계획의 미래상으로 설정하고, 정원을 교육과 공동체, 산업과 일자리, 도시재생까지 연결하는 전략으로 확장해 왔다. 정원을 하나 더 만든 것이 아니라, 정원이라는 방향으로 도시정책의 여러 분야를 묶은 것이다.

금정이 교토나 순천을 그대로 따라 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두 도시가 자신들이 무엇을 지켜야 하고,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 결정했다는 점이다.

좋은 것을 계속 더하는 것보다, 자신들의 방향과 맞지 않는 것을 거부했다.

그것이 도시의 취향이다.

금정도 이제 기준이 필요하다.

사업비가 확보됐다는 이유만으로 무언가를 세워야 하는가.

다른 지역에서 관광객이 몰렸다는 이유만으로 같은 시설을 가져와야 하는가.

행사가 끝난 뒤 남는 것이 없는데도 방문객 수만으로 성공이라고 말해도 되는가.

새로운 개발이 도시의 녹지와 보행을 해치는데도 세대수와 건물 높이만으로 발전이라고 평가할 것인가.

이 질문에 답하지 않고서는 금정의 정체성을 만들 수 없다.

도시의 취향은 안내판 색깔을 통일하는 것보다 먼저 시작돼야 한다.

금정과 어울리지 않는 개발에는 어떤 기준을 적용할 것인지.

주민이 이용하지 않는 시설을 언제까지 유지할 것인지.

효과가 확인되지 않은 행사를 관행처럼 반복할 것인지.

오래된 공간을 무조건 철거할 것인지, 새로운 역할을 부여할 것인지.

행정이 이런 선택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도시의 취향은 꾸미는 능력보다 거절하는 능력에서 드러난다.

모든 골목을 똑같이 만들 필요도 없다.

부산대 앞과 서동의 생활방식은 다르고, 장전동과 선두구동이 가진 조건도 다르다.

동네마다 다른 모습은 존중해야 한다.

다만 서로 다른 사업들이 같은 도시철학을 향해야 한다.

건축은 주변을 압도하지 않아야 한다.

공공디자인은 화려함보다 오래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상권사업은 사진을 찍는 시설보다 사람이 머무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축제는 유명한 가수를 불러오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지역의 사람과 가게가 다음 활동을 이어갈 수 있게 해야 한다.

개발은 건물의 규모보다 보행과 녹지, 생활의 질을 먼저 따져야 한다.

나는 금정의 취향이 숲의 도시라는 방향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본다.

그것은 모든 것을 초록색으로 칠하거나 나무 모양의 시설물을 만들자는 뜻이 아니다.

숲을 가리는 개발은 다시 검토하고, 자동차보다 보행자를 우선하며, 시설을 하나 더 놓기보다 그늘과 쉼터를 먼저 확보하는 것이다.

재개발과 도로, 공원과 상권, 관광과 축제가 같은 기준을 따르게 만드는 일이다.

‘숲의 도시’가 슬로건으로만 남지 않으려면 포기할 것도 있어야 한다.

과도하게 높고 밀도 높은 개발을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주변과 어울리지 않는 조형물을 세우지 않을 수 있어야 한다.

한 번의 행사를 위해 설치하고 철거하는 시설에 반복해서 예산을 쓰지 않아야 한다.

효과가 없는 사업은 오래됐다는 이유만으로 계속하지 않아야 한다.

무엇이든 조금씩 하는 행정은 큰 반발을 피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방식으로는 어느 분야에서도 분명한 변화를 만들기 어렵다.

도시전략은 모든 것을 갖겠다는 약속이 아니다.

무엇에 집중하고 무엇을 포기할지 결정하는 일이다.

정치에도 취향이 필요하다.

모든 요구를 다 받아들이는 것이 좋은 정치는 아니다.

당장은 눈에 잘 띄지 않더라도 오래 남을 변화를 선택하고, 도시의 방향과 맞지 않는 사업에는 하지 않겠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선택에는 비판도 따를 것이다.

그러나 누구에게도 싫은 말을 하지 않고 모든 것을 조금씩 나눠주는 정치로는 도시의 미래를 바꿀 수 없다.

금정은 이제 다른 도시에서 성공한 것을 뒤늦게 가져오는 도시에서 벗어나야 한다.

무엇을 지향하는지 분명하고, 그 방향과 맞지 않는 것은 거부할 수 있는 도시가 되어야 한다.

금정다움은 새로운 슬로건 하나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개발과 예산, 거리와 축제에 대한 수많은 선택이 같은 방향으로 쌓일 때 만들어진다.

도시에도 취향이 필요하다.

그리고 금정의 취향은 말이 아니라,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거부했는지로 증명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