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들은 정치에 무관심하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투표율이 낮고, 정당 활동에 참여하지 않으며, 정치 이야기를 불편해한다는 이유다.

하지만 나는 이 진단이 정확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청년이 정치에 관심이 없는 것이 아니다.

정치를 자신의 삶에서 중요하게 다뤄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한 것이다.

과거의 정치는 개인의 삶보다 앞에 있었다.

정당과 이념, 지역과 조직이 정치적 선택의 기준이 됐다. 한 번 지지한 정당을 오래 지지했고, 정치 참여는 공동체 구성원의 책임으로 받아들여졌다. 현재도 소위 기성세대에게는 중요한 가치로서 작용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의 청년은 다르다.

조직이 자신의 삶을 대신 결정하도록 두지 않는다. 정당이 옳다고 말한다고 해서 그대로 믿지 않고, 정치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권위를 인정하지도 않는다.

자신의 경험을 기준으로 판단한다.

내가 사는 집의 월세는 감당할 수 있는지, 일한 만큼 대우받을 수 있는지, 이 도시에서 미래를 계획할 수 있는지를 본다.

정치인의 말보다 자신의 통장과 계약서, 출퇴근길과 생활비를 더 믿는다.

그래서 청년에게 정치는 더 이상 특별한 영역이 아니다.

수많은 정보와 콘텐츠, 관계와 관심사 사이에서 선택받아야 하는 하나의 분야가 됐다.

정치도 재미가 없으면 보지 않는다.

믿을 수 없으면 떠난다.

내 삶과 관계가 없다고 느끼면 굳이 시간을 쓰지 않는다.

정치라고 해서 관심을 가져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정치는 자신을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말하지만, 청년의 시간과 관심을 얻기 위해서는 다른 모든 것과 경쟁해야 한다.

그런데 정치권은 여전히 청년에게 참여를 요구한다.

청년의 미래를 위해 투표해야 한다고 말하고,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세상이 바뀐다고 이야기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순서가 바뀌었다.

청년에게 정치 참여를 요구하기 전에 정치가 참여할 가치를 먼저 증명해야 한다.

청년의 삶을 바꾸지 못하면서 청년의 무관심만 탓할 수는 없다.

청년정책이라는 이름의 사업은 계속 만들어진다.

청년위원회를 만들고, 간담회를 열고, 청년 정치인을 앞세운다.

그런데 청년의 삶은 얼마나 달라졌는가.

집값과 월세는 감당하기 어렵고, 안정적인 일자리는 줄어들며, 지역에서 미래를 계획하기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의견을 내더라도 실제 정책에 반영됐는지 알기 어렵고, 정치인은 선거가 끝나면 다시 멀어진다.

이런 경험이 반복되면 청년은 정치를 믿지 않게 된다.

정확히는 믿지 않는 것을 넘어, 굳이 소비하지 않게 된다.

정치가 청년의 삶에서 밀려나는 이유다.

청년들은 정치인을 정책만으로 평가하지도 않는다.

태도와 이미지, 말의 방식과 일관성을 함께 본다.

무슨 말을 했는지뿐 아니라 그 말을 실제로 지켰는지 본다.

권위적인지, 위선적인지, 자신의 삶을 이해하고 있는지를 빠르게 판단한다.

한 번의 실수보다 말과 행동이 다른 것을 더 싫어하고, 거대한 명분보다 작더라도 확인할 수 있는 변화를 원한다.

그래서 조직과 경력만으로는 청년의 선택을 얻기 어렵다.

젊은 척한다고 청년 정치가 되는 것도 아니다.

유행하는 표현을 사용하고, 짧은 영상을 만들고, 청년을 행사에 세운다고 정치가 가까워지지는 않는다.

청년 정치는 청년에게 보여주는 정치가 아니다.

청년이 자신의 삶에서 변화가 일어났다고 느끼게 만드는 정치다.

나는 청년이 개인주의적이어서 정치를 외면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청년은 자신의 삶을 기준으로 훨씬 냉정하게 판단하는 세대다.

정당에 충성하기보다 문제의 해결을 원하고, 오래된 관계보다 현재의 결과를 본다.

정치가 실제로 도움이 된다면 선택한다.

도움이 되지 않으면 떠난다.

이것을 무관심이라고 부르는 것은 정치권의 편한 변명일 수 있다.

청년은 정치를 거부한 것이 아니다.

정치에 더 이상 특별한 지위를 주지 않는 것이다.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유능해야 하고, 신뢰할 수 있어야 하며, 삶의 변화를 보여줘야 한다.

정치가 다시 청년에게 선택받으려면 청년을 계몽하려 해서는 안 된다.

청년의 언어를 흉내 내는 데서도 벗어나야 한다.

월세와 일자리, 이동과 주거, 창업과 문화처럼 실제 삶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의견을 들었다면 무엇이 반영됐는지 보여주고, 약속했다면 결과로 증명해야 한다.

정치가 청년에게 관심을 요구할 것이 아니라, 청년의 관심을 받을 만한 정치를 해야 한다.

청년의 참여가 부족한 것이 아니다.

청년이 참여할 이유를 정치가 만들지 못한 것이다.

정치는 더 이상 중요하다는 이유만으로 선택받지 않는다.

청년의 삶에서 쓸모를 증명할 때, 비로소 다시 선택받을 수 있다.